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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_시

공항에서

(2026년 6월 16일)


공항에서


기다림만이 내 영혼의 물속을 헤적이는 날
당신이 언젠가 들렀을 것만 같은 공항으로 간다

기차나 배를 타고 오기에도
버스는 더욱더 안 될 어스름한 저편에 서서
기다린다 당신이 오는 발자국마다 손가락이 돋아나
지그시 누르는 자리마다 멍이 든다

밤 11시 24분 비행기가 도착하고
새벽 02시 55분 비행기가 떠날 때
전광판에는 도착하는 비행기와 떠나는 비행기가
검은 눈빛처럼 반짝인다

모든 길은 거짓이고 또한 그림자 같아서
백 년을 살아도 낯설 고향의 새벽 공항에 앉아
아주 조금 술을 마신다

당신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고
목소리도 마치 전생의 무늬 같다
취기만이 당신인 것처럼 곁에 앉았는데
많이 잘해주지 못해서 마음은 비었고
많이 안아주지 못해서 손도 비었다
꼭 내가 당신을 배반한 것같다

우리 모두 다만 기어이 가야 할 곳으로 떠난다
산으로 바다로 항구의 젖은 가슴에게로
그래서 이 지구에는 기다림에 살이 아픈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고
마을에는 연인을 지켜주는 방도 있다
그래서 나무들은 조금씩 키가 자라고
잎들은 조금씩 빛을 해에게 내준다

어제는 당신이 나를 더 기다렸고
오늘은 내가 당신을 더 기다린다
그것만이 농담이 아닌 이국의 공항에서
상냥한 벗인 취기에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아, 당신을 기다리면서 물들면서
나는 이 세상 속, 어떤 예쁜 사람이 되어
사라져간다

* 허수경,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에서 (10~11)
- 난다시편 009, 2026. 6. 9


:
1964년생, 나보다 겨우 두 살 많은, 먼저 떠난 누이 같은 시인의 유고시집을 손에 들고
며칠을 망설이다 펼쳐 만나봅니다.

날은 나날이 더워져가는데 가슴 속으로 서늘한 바람 한줄기 불어옵니다. 그럴수만 있다면 여권 챙겨들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곁에는 상냥한 벗인 취기만이 머물뿐, 갈 수 있는 곳은 없네요. 오늘밤엔 묵혀둔 한 병 따서 조금만 마셔봐야겠습니다.

취기만이 당신인 것처럼 곁에 앉아있겠지요.

( 260616 들풀처럼 )


#오늘의_시


- 사진 : 0613 마지막 남은 한그루 산딸기, 텃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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