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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서 (2026년 6월 16일)공항에서기다림만이 내 영혼의 물속을 헤적이는 날당신이 언젠가 들렀을 것만 같은 공항으로 간다기차나 배를 타고 오기에도버스는 더욱더 안 될 어스름한 저편에 서서기다린다 당신이 오는 발자국마다 손가락이 돋아나지그시 누르는 자리마다 멍이 든다밤 11시 24분 비행기가 도착하고새벽 02시 55분 비행기가 떠날 때전광판에는 도착하는 비행기와 떠나는 비행기가검은 눈빛처럼 반짝인다모든 길은 거짓이고 또한 그림자 같아서백 년을 살아도 낯설 고향의 새벽 공항에 앉아아주 조금 술을 마신다당신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고목소리도 마치 전생의 무늬 같다취기만이 당신인 것처럼 곁에 앉았는데많이 잘해주지 못해서 마음은 비었고많이 안아주지 못해서 손도 비었다꼭 내가 당신을 배반한 것같다우리 모두 다만 기어이 가..
우리들은 지방도시 근교에서 살고 (2026년 6월 3일) 우리들은 지방도시 근교에서 살고 지방도시 근교에는 비닐 하우스마다 한 개씩의 태양이 이글거리고 황화처로 삭아내리는 강과 공장과 사람은 살지 않으나 도시를 먹여살리느라 죽어가는 도시 근교가 있습니다 수은납과 생물학적 산소요구량이 공존하는 곳 선거관리위원회가 있고 예비군 본부가 있고 주민등록을 옮겨간 사람들의 빈집이 있는 곳 여기는 가야터였고 난생(卵生)인 우리들은 불임인 채 행정구역 안에서 아버지는 수시로 도로교통법을 어기며 나는 수시로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해명되지 않는 식물들과 곤충들이 자라고 아버지와 나는 살고 있습니다* 허수경, [창작과비평 2026 여름호 통권 212호] (50)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에서- 실천시선 57, 초판 19..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2026년 5월 25일)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 남는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 세상에 만약 살아남은 사람이 너 하나라고 해도 너는 기어이 멸종을 선택할 사람. 너는 그게 더 쉬운 방식이라고 말하면서도 젖은 발을 신고 나가야만 하는 사람의 표정이 된다. 최후의 날, 너는 아무도 읽지 못할 보고서를 통해 인류 멸종의 이유에 대해 쓸 것이다. 이를테면, 한쪽 굽만 닳았던 구두굽에 대해서. 세 번째 단추가 떨어진 셔츠를 자주 입었던 일이라거나 고장 난 시계를 고치지 않았던 일에 대해서(하루에 두 번은 맞았다). 볼펜 뚜껑을 잃어버렸던 일, 혹은 지난여름 네가 물을 많이 주어 결국 스투키 화분 뿌리를 썩게 했던 일에 대해서. 새로 들인 유칼립투스의 싹은 틔우지 못하고 버렸던 일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