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0일)
금오도 3
가겟집이 내놓은 모노륨 깔린 평상에는, 고양이도, 새도, 중늙은이도 쉬어 가지만, 점심때가 지나면 대여섯 집 건너 양달 집 노파(老婆)가 지팡이도 없이,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고 슬로우비디오로 걸어나와서 평상에 앉는다. 초점을 버린 지 오래된 눈을 하늘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하늘로 천천히 왕복 시키다가 졸음에 겨워 눕는다. 평상에 쓰러졌다거나 던져졌다는 표정으로 짐짝이 돌아눕는다. 짐짝이 부풀었다 쪼그라졌다를 반복하며 잠들어 있는 동안, 길에는 꿈도 사람도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는다. 짐짝은 육지로 날아간 새끼들도 모두 잊었다. 이미 다 깎고 파내어 바다에 내어준 껍질뿐인 몸통 위로, 풍화에 맡겨진 남은 숨이 가루로 날리고 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동백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 손월언, [창작과비평 2025 겨울호]에서 (87)
- 창비, 통권 210호, 2025.12. 1
:
겨울
가고
봄이
저만치서
오고
있다는데,
( 260220 들풀처럼 )
#오늘의_시
- 사진 : 230413 경남일보, 금오도 동백
금오도 3
가겟집이 내놓은 모노륨 깔린 평상에는, 고양이도, 새도, 중늙은이도 쉬어 가지만, 점심때가 지나면 대여섯 집 건너 양달 집 노파(老婆)가 지팡이도 없이,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고 슬로우비디오로 걸어나와서 평상에 앉는다. 초점을 버린 지 오래된 눈을 하늘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하늘로 천천히 왕복 시키다가 졸음에 겨워 눕는다. 평상에 쓰러졌다거나 던져졌다는 표정으로 짐짝이 돌아눕는다. 짐짝이 부풀었다 쪼그라졌다를 반복하며 잠들어 있는 동안, 길에는 꿈도 사람도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는다. 짐짝은 육지로 날아간 새끼들도 모두 잊었다. 이미 다 깎고 파내어 바다에 내어준 껍질뿐인 몸통 위로, 풍화에 맡겨진 남은 숨이 가루로 날리고 있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동백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 손월언, [창작과비평 2025 겨울호]에서 (87)
- 창비, 통권 210호, 2025.12. 1
:
겨울
가고
봄이
저만치서
오고
있다는데,
( 260220 들풀처럼 )
#오늘의_시
- 사진 : 230413 경남일보, 금오도 동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