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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_시

먹기 위해 살기로

(2026년 1월 23일)


먹기 위해 살기로


옛 친구 조문 가서 밥만 먹고 왔다
말 붙일 사람 없어 그냥 나오려다가
너와 먹던 밥 생각에 눈치 없이 퍼먹고 왔다
입원하기 전 풀 죽은 널 데리고 밥집 갔을 때
사는 낙이 없어 먹는 재미 하나로 산다던
농담이 내게도 진담으로 돌아왔다

먹기 위해 살기로 했다
사는 게 뭔지도 모르는데
살기 위해 먹는 게 가당한 일인가
세끼 먹자고 매일 고래 잡으러 가는 일도
사는 일은 분명 아닐 터이고
한상 차려 먹자고 강을 막고 산을 들어내는 일도
사는 일 분명 아닐 터이고
도구 아닌 몸은 길들여진 도구가 되어
목숨 파먹고 사는 일이 사는 일인가

세끼보다 잘난 게 뭐 있겠나
세끼 사소함보다 더 위대한 사소함이 또 뭐냐
밥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그보다 더
대단한 게 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
매달리지 말고 무릎 아래 두자
세상사 모든 일을 세끼 지평 아래 놓아두자

다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던
네가 잡아놓은 건 빚 고래였다
몸도 바닥까지 빚이 되도록 굴렸다
네 말대로라면 세끼 먹자고 네 몸도 담보 잡혔다
생전에 잡아본 적 없는 고래가 너를 삼켰다
우리는 왜 선하게 살겠다면서
가해자처럼 성공하려고 하는가

먹기 위해 살면 바람과 꽤 가까워지겠다
그러면 몸은 써먹는 연장이 아니라
부리는 사용자가 되겠다

먹기 위해 살면 나머지가 생기겠다 두툼한 나머지가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대륙만한 여백을

* 백무산, [누군가 나를 살아주고 있어]에서 (13~15)
- 창비시선 527, 2025.12. 5



:
우리는 왜 선하게 살겠다면서
가해자처럼 성공하려고 하는가

문득문득 떠오르던 질문들
뒤로하고 여기까지 왔다

그래, 나는
이미, 벌써

살기 위해 먹는 게 아니라
먹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늘어나는 무게로 충분히 증명해내고 있다

밤은 길고
술은 자꾸 생각나는데
그래도 이틀에 한 번까지는 아님에
마음을 놓아본다

먹기 위해 살기로

( 260123 들풀처럼 )


#오늘의_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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