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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_시

다녀오겠습니다!

(2025년 12월 29일)


다녀오겠습니다!


아침에 유치원에 간 아들이
저녁에 서른다섯 살이 돼서 돌아왔다
늦었네 하고 말했더니
벽에 걸린 뻐꾸기시계를 그리운 듯이 올려다보면서
아들은 어른의 목소리로 응, 하며 대답했다
그동안 뭐 했어? 아내가 묻자
아들은 낯익은 미소를 띠고 머쓱하게 말했다
3년 전에 결혼했고 아이는 없고 직업은 우주건축가라고
나도 그런 식으로 내 인생을 요약했지
어, 이 녀석 벌써 흰머리가 났네
나와 동갑인 아들이 술을 따라주는 게 쑥스러워서
엉겁결에 "아, 고마워요"하고 말해버린다
아내가 아들과 나의 얼굴을 찬찬히 비교해 본다
그런데 아들이 30년 후의 지구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 부부는 경악했다
어떻게 그런 비참한 세계에서 용케 살아남았을까
환경 파괴, 인구 폭발, 핵무기, 민족주의에다 테러리즘
불씨는 지금도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
가만있자, 그 지금이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된 미래가 아들 세대의 지금이고
복잡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저어, 소용이 없을까? 이제부터 엄마 아빠가 노력해 봐도?
글쎄요, 시간의 불가역성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아내는 연극의 한 장면처럼 아들의 옷소매를 잡고
여기서 같이 살자고 울면서 애원하지만
그것도 역시 섭리에 반할 것 같다
미래는 전적으로 우리 부덕의 소치인데
아들은 묘하게 관대하다
내가 그 세계에서 벌써 사라졌기 때문일까?
물어보고 싶기도 하지만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
"우리는 괜찮아요. 운 좋게 추첨에 뽑히면 달에 이민 갈 수도 있어요."
아들은 허리에 손을 대고 영차 하고 일어서고
나와 악수를 나누고 아내의 뺨에 외국인 같은 몸짓으로 입을 맞춘 뒤
현관에서 한밤의 어둠을 등에 지며 돌아보고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다섯 살의 목소리로 외쳤다

- 요쓰모토 야스히로, [세계중년회의]에서, (30~32)
- 문학과지성사, 2025.11.10



:
우연히 만난
낯설지만 익숙하고
익숙하지만 놀라운 이야기

아들이 술을 따라주는 게 쑥스럽다고
시인은 말하는데

내가 따라주는 술을 함께 마시던
울 아버지는 즐거워 하셨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날은 차고
해는 기울고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 251229 들풀처럼 )


#오늘의_시


- 사진 : 201604 창녕 우포늪에서,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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