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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_시

(2023년 10월 18일)


            컵


컵은 아무 데나 놓여 있지
누가 여기에 컵을 가져다 놓았는지 몰라

컵은 말이 없네

살고 있을 뿐
컵의 나날을 다만 컵으로서
한컵 정도,라고 얼버무려 말할 때의 그 사소한 습관으로서

컵은 텅 비어 있네

어느 추운 날
우연히 만난 당신에게서 커피나 한잔 얻어 마실 수 있다면,
그런 꿈을 꾸는 게 아닐까 컵은

잠시 웃네,

쟁그랑 소리를 내며
우는 순간도 오지
예의 그 사소한 습관으로서

컵을 든 누군가
피 흘리며 아파하네 컵, 컵 하나 때문에

이렇게 끝나버릴 줄은 몰랐어요, 숨죽인 파편을 멍하니 바라다보네

누가 그로 하여금 컵을 들게 했는지 컵을 깨게 했는지
몰라

그는 다만 커피를 한잔 마시고 싶었지 아주 따뜻한 커피를

* 박소란, [한 사람의 닫힌 문]에서
- 창비시선 429, 2019. 1.31



:
함께
마실 수 있을 때가
좋을 때다

그러니
언제든 비워두고
기다린다

( 231018 들풀처럼 )


#오늘의_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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