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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_시

환절기

(2023년 8월 23일)


             환절기


여름은 가을로 아프게 넘어갔다
여름이 너무 길고 격렬해
올가을엔 단풍이 늦어지겠지만
기온이 낮아질수록 단풍은 곱게 물든다고 했다
여름은 가을로 스산하게 넘어갔다
일교차는 가난한 이들에게 더욱 커
낡은 외투의 깃을 자꾸 끌어올려야 했고
의지할 대 없는 아들은 옛 술집 근처로 모였다
새로 닦아 놓은 길은 황폐해지고
실망한 나무들은 일찍 잎을 버려서
이슬이 내리기도 전에 마음은 누국하였다
여름은 가을로 아슬아슬하게 넘어갔다
구름도 흑백사진의 한 귀퉁이처럼 웅크리고 앉았다
어이없이 쫓겨난 채 집의
허울을 붙들고 있는 이들에게도
전기도 수돗물도 끊긴 가을은 왔고
탐욕이라 불러도 좋고
환멸이란 수식어를 붙여도 좋을
폭력적인 한 시대가 긴 그림자로
골목을 둘러싸고 있었다
팔 한짝을 잃어버린 옷소매처럼 마음
허공으로 풀풀 날려다녔지만
비루함과 무기력의 껍질을 벗고
귀뚜라미처럼 더듬이를 허공에 올린 채
이 터질 것 같은 순간에 대해 타전하고 싶었다
우리가 어찌하지 못하는 시간 말고
천천히 바뀌며 우리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는
또 하나의 거대한 시간 쪽을 향해

* 도종환,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서
- 창비시선 333, 2011. 7.18



:
아프게
스산하게
아슬아슬하게
넘어갔다,라고 얼른 말하고픈
여름밤을 걸었다,

동네 숲길에서 가을바람이
머리 위를 얼핏 지나가는
여름밤을 걸으며

옛 술집 근처를 서성이고 있다

( 230823 들풀처럼 )


#오늘의_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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