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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_시

능소화

(2023년 6월 23일)


   능소화

   
    열흘 남짓 저것들을 겪어야 합니다. 적막만 장마 대신 몰아치는 뇌리에 헤살을 놓는지 바람과 어울려 수다스럽고 땡볕 아래 흘리는 웃음이 흥건합니다. 마른장마라 섶다리 끊어질 일 없습니다.
   .
   너 닮은 것을 심었구나 빙그레 웃으실 때는 속내를 몰랐습니다. 여름동백이라 칭하시며 너와 같다 하실 때에는 새치름한 성정을 뜻한다 싶었습니다. 꽃이 옷을 입느냐며 다 벗으라 채근하시던 밤을 기억합니다. 속살이 마당의 저것들 뺨치겠다며 어루만지시던 손길을 잊지 않았습니다.
   .
   여름동백이라니요. 뚝 끊고 돌아서면 그만일 계집이라니요. 가신 연후로 뜨락 너머 고샅만 여겨보는 애통을 짐작이나 하시는지요. 제비가 대청마루를 관통해 날아가도 놀라지 않다가 발자국 소리만 나면 선잠이 천리는 달아나고 퍼뜩 일어나 매무새를 고친답니다.
   .
   어른들 걱정처럼 한 움큼 쥐고 눈을 문지르면 당달봉사 될까요. 떠나신 후로는 세상 보아야 할 것 없고 보이는 것 없으니 봉사와 다름 아니지만 조석으로 혹시나 마주하는 은경(銀鏡)마저 버릴 심산입니다. 쓸 일 없는 다리미와 숯도 치웠습니다. 옷고름으로 달면 어여쁘겠거니 챙겨두었던 비단 지스러기도 상보나 만들겠습니다.
   .
   저것들을 겪어야 합니다. 베어버리지 않고 끝내 버텨내겠습니다. 후일 돌아오시면 한 움큼 그대와 내 눈을 문지를 겁니다. 함께라면 여생을 주저앉아 더듬거려도 좋습니다. 아니 오시면 모로 세워둔 절구대가 쓰러지듯 이승을 떠날 겁니다. 유언이야 따로 있겠는지요. 마당의 저것을 베어 한 자 크기로 토막 내라 하겠습니다. 석 달 열흘만 초분에 뉘어 애욕의 살이 스러진 후에 장작 삼아 뼈마저 화장하라 하겠습니다. 골분(骨粉)으로라도 계신 곳까지 날아가 맴돌 겁니다.

* 전영관 詩人



:
한 번 만나지 못하고
유월이 다 가네,

'끝내 버텨내'고 있으니
장마 오기 전 찾아오라고

불쑥불쑥 여기저기
떠오르는 그대,

'여름동백'
그대.

( 210630 들풀처럼 )


올해도 능소화
장마 전

이토록
화창하게 피었다가

뚝 끊고 돌아서
떠나가겠지만

우리는 이 여름을
끝내 버텨내겠.....

( 230623 들풀처럼 )


#오늘의_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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