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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_시

톱니

(2023년 9월 14일)


톱니


어린 나는
무너지는 마음 안에 있었다

무너지는 것이 습관이 된 줄도 모르고
무너지고 무너지면서
더 크게 무너지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주저앉을 마음이 있다는 건
쌓아올린 마음도 있다는 것
새가 울면
또다른 새가 울었다

또렷하게 볼 수 있다면
상한 마음도 다시 꺼내볼 수 있을까
도마 위에 방치된 생선이나
상온에 오래 놔둔 두부처럼
상한 것은 따듯하고
상한 것은 부드럽게 부서진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은
감당할 수 없는 일로 남아
마음을 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빛이 물속으로 들어간다
물을 찢으며 들어간다
어린 나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손바닥이 열려
흐른다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아침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맞물리며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했다

덜 자란 나무는 따듯할 수 있다
한번 상하고 나면 다음은 쉬웠다

* 안미옥, [온]에서
- 창비시선 408, 2017. 4.17



:
한번 상하고 나면
다음은 쉬웠다

저녁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적 많았다

마음을 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 230914 들풀처럼 )


#오늘의_시


- 사진 : 0913 퇴근길풍경, 김해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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